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un 10. 2023

메이의 문어인형

오늘은 GCSE(11학년이 보는 고등교육검정시험) 지리 시험과 A-level (13학년이 보는 대학입학시험) 사회학 시험을 동시에 감독해야 하는 노트북 시험장에 배치가 되었다.


GCSE 8명과 A-level 1명 총 9명으로 추가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학생의 지리시험, 추가시간이 주어진 지리시험, 사회학시험 이렇게 세 개의 각기 다른 시간의 시험이 진행된다. 각각의 종료시간에 따라 종료 5분 전이라고 해당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것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A-level학생 메이. 만 나이로 17살이나 18살이다. 다른 모든 학생들이 10분 전에 입실을 완료했는데 메이는 시험시간이 거의 다 되어 교실로 들어왔다. 매니저가 메이는 혼자 다른 시험을 보니 원하는 위치에 학생을 앉게 해 주면 된다고 했는데 혹시 몰라 맨 뒷자리에 배정해 놓았는데 자리가 맘에 드는지 별 말없이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나타날 때부터 눈을 어디 한 군데다 잘 두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불안해했다. 책상에 시험지, 필통 말고는 아무것도 올려놓을 수 없는데 메이는 인디핑크색 문어인형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주무르고 있었다. 매니저와 확인해 볼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하고 지켜보았다.


시험 시작을 알리고 나서 초반 20분 정도는 시험지나 노트북 화면을 흘깃흘깃 보기만 하고 창밖만 바로 보는 게 영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으로 이 학생 시험이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메이의 사회학 시험은 총 2시간 30분이고, 25% 추가시간 38분을 합쳐서 메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 38분. 9시에 시험을 시작해서 12:08분에 마치는 시험이다. 내가 지금까지 혼자 감독한 시간으로는 최장시간이다.


지리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10시 30분에서 50분 사이에 다 마무리하고 나가고 나서도 메이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앉아 시험을 봤다. 추가시간까지 다 쓰고서야 시험이 마무리되었다.


노트북으로 시험을 보는 학생은 감독관이 시험 종료를 알리면 바로 저장버튼을 누르고 시험교실에 설치된 프린터로 바로 프린트하여 마지막장에 본인 서명해서 제출하게 되어있다.

프린트가 내 책상 옆에 있어 프린트물을 가지러 올 때 문어인형을 들고 와서는,


'내 문어 인형 어때요?'라고 대뜸 묻는 게 아닌가. 난 학생에게 그 나이에 그런 거 들고 다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안심시켜 주기 위해,

'귀여워. 문어 인형은 처음 본다. 내 딸도 7학년인데 코바늘로 매일 그런 거 떠서 친구들 나눠주고 친구들이랑 학교에 늘 들고 다녀. 잠잘 때도 여러 개의 인형에 둘러싸여 자.'라고 말했더니 한층 더 들뜬 목소리로

'나도 집에 인형 많아요. 개들 없으면 잠 못 자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래서 한마디 더해주었다.

'어른들도 그런 사람 많아.'


이런 대화를 하는 동안 프린트가 나왔다. 메이가 프린트물을 가져오려고 팔을 뻗는 순간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 난 상처로 가득한 그녀의 팔이 내 눈에 들어왔다.  시험 초반 어디에 둘지 몰라하는 불안한 시선이 설명이 되는 부분이다.

그래도 나와 대화를 나눌 때의 명랑한 말투는 생각해 보면  다른 18살 학생들과는 좀 달리 어린아이 같았다. 왜 메이가 그런 불안의 세계에 빠져있는지는 모른다.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말투와 애착인형을 들고 다녀야 맘이 편한 아이. 자기 몸에 상처를 내가며 버텨나가려 하는 것이 혹시 자기도 모르게 너무나 빨리 커버려 정신적으로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대처해 나가는 것이 벅차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럴 때 내가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편견 없는 모습으로 편하게 대화해 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나갈 때 점심 맛있게 먹으라고 하니 나에게도 같은 인사를 밝게 건네고 교실을 나갔다.


시험을 얼마나 잘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프린트 양이 그리 많지 않은 걸 봐서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보통 2시간 30분 시험에는 16장 자리 밑줄만 그어진 답지를 대부분 꼬박 채워낸다. 그에 비하면 메이의 프린트된 답지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식 시험 2주 차를 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